‘장애인’과 ‘혼자 사는 여성’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성범죄는 사안의 경중에 무관하게 죄질이 나쁜 범죄이다. 성범죄에 허용적인 사회는 건강한 사회일 수 없다. 최근에 일어난 한 사건의 예를 들어본다. 고향 마을에 내려가 프리랜서로 평화롭게 살던 50대 여성 집에 강도가 들었다. 침입자는 부엌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고, 놀란 여성이 불을 켰는데도 그는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한 손에 뭔가를 꼭 쥔 상태로 빤히 쳐다보면서 다가왔다고 한다. 공포에 휩싸였던 여성이 슬기롭게 탈출하여 이웃 친척 집으로 달려갔고, 다행히 용의자가 잡혔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철저한 조사를 의뢰했는데 경찰은 지문 채취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물증이 없다고 미적거리고 있고, 그사이 가해자는 그 집 주변을 여전히 어슬렁거리고 있다. 동네 분들은 “일 안 당했으니 다행”이라며 며칠 전에도 이웃 동네 할머니 집에 강도가 들었다는 이야기를 예사롭게 하는 분위기이다. 피해 여성은 사냥감을 잡은 듯 자신을 뚫어지게 보던 눈빛이 뇌리에 남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고 예전의 평화롭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성폭행 미수 사건을 일상화된 불행 정도로 여기는 사회는 폭력을 방조하는 사회이다. 눈에 띄는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대수롭지 않게 다룰 때 성범죄 상습범들이 만들어진다. 특히 전통적인 정절 이데올로기가 아직 남아 있는 사회에서 이를 내면화하고 있는 경우, 성폭력 피해자는 수치심에서 사건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운 피해자도 끔찍했던 기억을 하루빨리 잊고 싶어서 고소를 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건과 같이 ‘경미한’ 성폭행 미수 사건은 성범죄 근절을 위해 놓쳐서는 안 될 사건이다. 그런데 경찰은 이 건을 일반 강도 사건으로 취급함으로 범죄자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전문가 중심의 특별수사대를 만들어 인화학교 사태 재수사를 명했다고 한다. 성범죄에 너그러웠던 그간의 현실을 고려할 때 전문가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경찰청장의 조처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될 때 벌이는 ‘주목의 정치쇼’가 되지 않게 하려면 각 지역 경찰서에 이를 다루는 전문부서를 마련하고, 지금부터 전문가를 키우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일상의 사건을 다루는 지방 경찰관부터 ‘높은 곳’에 있는 법조계 인사들까지 성범죄에 관한 학습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여성 전담 경찰들을 현장에 배치하고 피해자 중심의 수사를 벌인다면 성범죄 근절을 위한 획기적인 방안들이 나올 것이다.
지금은 어느 곳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서로를 알고 있기 때문에 너그럽게 봐주는 경향이 있어 농촌 마을은 성범죄가 잦아지는 추세이다. <도가니>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지금 핵심적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이들은 시민활동가들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지역사회가 되살려져야 한다. 다행히 ‘여성의 전화’와 같은 단체들이 그간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이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면서 사법부와 정부, 국회, 그리고 시민사회가 긴밀한 협력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성범죄 문제를 푸는 핵심 고리가 될 것이다. 교육청에서는 학력고사를 통해 학교별 등수 매기기를 시작했는데,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실은 지역별 안전도 평가이다. ‘장애인’과 ‘혼자 사는 여성’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지역 순위를 매기는 작업을 이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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